기갑학교 126기 (하사관학교, 하후보)

2011. 5. 10. 18:54추억

어언 30년 전 군 훈련소 얘기다.

1983년 6월 3일 입대하여 일주일 만에 차출되어 육군하사관학교에 입소해서 전반기 교육을 받았고, 다시 광주에 가서 후반기 교육을 받았다.

전반기는 육군하사관학교에서 10주 보병 기초훈련이었다.

실제로 입대해서 이런 곳으로 가서 훈련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는데.

연무대에서 신체검사 마치고 1주일 정도 대기하고 있는데 어느날 이름이 불렸다.

갔더니 50여명이 모였다.

처음에는 모두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었는데, 기갑 하후보 교육대로 간단다.

빠지고 싶으면 얘기 하란다. 책임지고 공수부대 보내 준다고... 누가 감히 공수부대 가겠다고 나서겠는가?

뻘건 먼지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이 익산, 지금의 부사관학교(육군제1하사관학교)였다.

트럭에서 내리자 마자 뒤로 "까져" 하는데 정신이 없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잔뜩 긴장하고 겁먹고 있는데 부연 설명을 한다.

뒤로 까져는 고목나무가 넘어지듯이 그래로 뒤로 넘어지란다.

요즘에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뒤로 취침에 앞으로 취침, 선착순, 거의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군기를 잡는다.

게다가 우리보다 1주 먼저 입소한 공수하사후보생들 마저 식당에서 군기를 잡는다.

2~3주간 밥 한 끼를 제대로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짬통까지 들고 가서 나머지를 먹었는데, 나중에는 이마저도 들켜서 식기물고 짬통까지 기어가곤 했다.

아침에 나오는 빵을 1개는 식당에서 1개는 학과  출장가 가기 전 총들고 화장실 가며 먹었다.

그 땐 왜 그리도 밥 먹는 시간 조차 빡빡하게 하는지...

 

그리고 10주 후 수료 후 광주로 기차를 타고 이동한다.

그때 우리는 포병, 화학병 등과 함께 교육을 받았었는데, 후반기 교육을 위해 서로 다는 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당시 기갑학교 군기가 엄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전차(탱크)가 직각으로 움직인다고 항상 직각 보행해야 된다고 소문이 자자했었는데...

기갑학교 입소하자 마자 더블빽 메고 축구 골대를 몇 번이나 선착순 했었는데...

위탁 온 해병대 기갑 하사 3명이 3회까지 1등을 하고 열외되고 나니깐 우리 기수들 차례가 왔다.

말로만 듣던 해병대, 역시 명불허전이다.

 

처음 기갑학교에서 전차를 보았는데 그 위엄과 굉음에 기가 죽어 버릴것 만 같았다.

여기에는 책을 왼 쪽에 끼고 오른 손을 110도 정도 위로 흔들면서 걸어야 한다.

실제로 그렇게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 절도가 있어 멋 있어 보인다.

군대에서 책들고 공부하러 다니는 것도 좀 이색적이다.

매일 아침 식사 후 정리하고 일과 시간 학과 출장이다.

오른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사실 교육 자체는 어렵지 않다. 전차에 대한 기본 기술육과정이라 수업만 열심히 들으면 된다.

이제 단풍하사라 조교들도 존대말을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 친밀하게 지낸다.

다만 내무반 들어오면 하사라는 이유때문에 수시로 얼차려와 목봉체조를 시킨다.

내부반에서는 수통 뚜껑에 원산폭격, 철모에 원산폭격, 김밥말이 등등

철모나 수통 뚜껑에 머리 박으면 그 다음날 머리에 혹이 하나 생긴다.

그 혹이 가라 않으면 딱지가 생기고...

 

주말에 축구나 배구 경기해서 지면 무조건 목봉체조를 해야한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운동 경기에서 기수간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고 지면 서로 원망하지 않고 기꺼이 얼차려를 받곤했다.

그나마 우리 기수는 축구는 거의 전승을 한 것 같다.

배구는 지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점호 전에 고생한 적이 많이 있었지만....

 

교육 기간 중 중공군 전투기가 넘어올 땐 비상이 걸려서 화장실도 단독군장에 총들고 간 것 같다.

전쟁이면 우리는 무조건 전방으로 투입된단다.

 

14주 교육기간 중 막바지에 전차포 사격 훈련 땜에 잠시 "비아"라는 지역에 머물게 되었는데 취침점호 후에 사제 술과 라면을 먹고 밤새도록 얻어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입대해서 약 20주 정도 쯤 되었는데 처음으로 사제(외부) 술과 음식을 먹었으니 제 정신이었을리가 없었을게다.

라면과 김치와 소주가 그때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느꼈었지요.

기갑학교 내에서도 자대 병사에게서 양주 구입해 달라고 해서 먹고 화장실에서 들켜서 데지게 맞았었는데...

또 들켜서...그날 밤 우리 때문에 53명 전체가 잠도 못자고 우리가 맞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았을거다.

미안한 마음에 몇 번이고 동시에 일어나 통사정을 했는데도 들어 주지 않았지요.

아마 새벽 3~4시까지 그렇게 얼차려를 받았었던 것 같다.

아침에 보니 엉덩이에 대나무 몇 개를 쥔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 구대장은 우리들 중에 분명이 외부에서 술을 마시게 될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전에 대나무를 준비시켰었다.

 

그날 이후 우리 4명은 악당이라 불렸었지...

그 악당들 잘 있겠지?

임시태! 자넨 고향이 안동이랬지?

남윤희 상주 함창.

김해병(?) 넌 김해 산다고 했나? 

  꼭 김해에 놀러 오라고 했었는데,...

  김해병 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미안하다.

언제 얼굴 한 번 보자!

내가 누군지 알겠지?

촌닭 혹은 닭대가리. 권종혁

뭐야! 동향(김천)의 동갑내기 구대장이 닭대가리라고 했었지.

그 구대장은 김광식(?)...

새벽에 일어나서 함께 공을 차기도 했었는데..

 

육군전투병과학교 하사지휘 #126 수료기념 1983 11. 26

6개월간 달고 다녔던 단풍 떼구 제대로 하사 계급장 달구 한 컷

너무 오랜 세월이라 생각나는 이름이 별루 안되네!!! ㅠㅠ 임시태, 남윤희 제일 많이 기억난다. 그리고 김해병, 이름이 도대체 기억이 안나네???

조현욱, 아래줄 맨 왼쪽. 이금철 어딨니? 육하교부터 나랑 항상 같이 있었지?(오른쪽 맨 아래 두번째) 서울 산다고 했지? 그 옆에 옆에는 기수 반장이었는데 이름이 뭐야? 별명이 산적이었지? 최영일... 또 생각나면 ... 아래 줄 왼쪽에서 두 번째는 서울 뺀질이...

 

 

 

 

 

 

 

제발 이 글 보구 연락좀 해라!

인간들아!!!!!

아래 덧글 남기면 내가 연락할께!!!!

권종혁

조헌욱

임시태

남윤희

강응석

김철수

류성길

이금철 전화번호 없음

최영일 전화번호 없음

김종찬

노주현

김삼은 인천 살구 기갑학교 입교 및 퇴교식 선서했다는데... 연락처 남려라!

우상민

지금까지 확인된 명단이다.

故 남윤희!

그날 이후 얼굴도 못보고 네 영정만 볼 수 있었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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